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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했어. 그거 마저 사주지 그랬어?

기찻길옆 2011. 5. 10. 09:00

어머님이 계시는 나는 그래도 행복하다.  어머님이 계시기에 우리 4형제들은 자주 모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버이날이라고 내려가니 형님은 미리 교외의 식당을 준비해 두었다. 모처럼 먼 나들이 길을 나선, 신이 나서 떠드는 당신의 새끼들인 꼬맹이들을 보는 어머님도 즐거워하셨다.

 

돌아오는. 큰집인 부산의 화명으로 드는 길이었다.

어머님이 자꾸 차창 밖을 기웃거린다.

 

“저분은 옷도 잘 차려 입었건만 왜 길거리에 나와 있지?”

어머님 나이께의 한 할머니가 네거리 길 모퉁이에 앉아 나물을 팔고 있다.

새 옷이지 싶은 개량한복을 입은, 길거리 행상치곤 어딘지 어색함이 줄줄 흐른다. 벌려놓은 전은 한 움큼의 나물밖엔 없다.

 

평소에도 특정인물이나 사물을 보면 쓸데없는 관찰이 병처럼 도지는 나, 이어서 유심히 할머니의 행적을 살펴보았다. 후덕한 인심이 많이 돋보이는 어머님 지적대로 입은 옷은 아주 깨끗한 새 옷이었다. 도저히 저 자리에 앉아 있을 그런 위인으론 비치지 않았다.

 

특히나 오늘은 어버이 날인데. 무엇하러 길가에 저러고. 쪼그려 앉아 행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것 다 팔아도 만원도 안 되지 싶은데 그렇게 돈에 목이 멨을까? 저 나이라면 오늘은 아무 곳에 가도 음식도 또 용돈도 거저 얻을 수가 있을 터인데 굳이 자식들 보기 추한 행상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뒷날. 그러니깐 어제이다.

술을 좋아하던 나는 기어이 취할 때까지 다량의 술을 마셔버렸다. 회사엔 연가신청을 해 놓은 터이라 모처럼 마음을 놓고 형제들과 술자리를 가져서 이었다.

 

어머님이 차려준 점심을 먹고서 화명동 큰집을 빠져 나오다 어제 그 자리에 변함없이 앉아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빗물을 피해 피자가게 채양 밑으로 옮긴 것 말고는 어제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입은 옷하며 벌려놓은 비닐꾸러미속의 나물들 하며.

 

그제야 나는 바로 곁에서 할머니의 행색을 확연히 훑어 볼 수 있었다.

 

역시나 할머니가 입은 개량한복은 새것이었다. 그러나 유난히 색이 번들거리고 소매 끝의 처리가 매끄럽지 못함을 보고 저 정도의 옷이라면 길거리 싸구려 난전에 가면 기만원정도면 구입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옷은 어쨌든 어울리지가 않았다. 남의 옷을 억지로 입혀놓은 듯,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할머니 역시도 옷이 몸에 붙지 않는지 자꾸 옷자락을 이리 밀쳤다 저리 밀쳤다 하였다. 미처 분칠을 하지 못한 목덜미 안쪽이 까맣게 그을려 있는 것을 보며 나는 내가 아는 고물행상 할머니를 떠 올렸다. 볕에 노출된 채 폐지 수집을 하여서 언제나 그 할머니의 얼굴과 목덜미는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돌아서서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기며 나는 호주머니를 뒤졌다. 어제 술 마시며 조카들에게 몽땅 주머닐 털은 기억이 나서였다. 집에까지 갈 차비 빼니 3천원이 남는다.

 

“할머니 이거 얼마에요?” 기어이 할머니 앞에 같은 자세로 쪼그려 앉았다.

“아, 이거 천원이고 이건 2천 원요.” 할머니의 쭈그린 얼굴이 대번에 보름달처럼 펴졌다.

 

고르지 못한 치열을 드러내며 환히 웃는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우리 어머님 증손녀의 웃는 모습과 너무도 똑 같다. 조금의 기쁜 일만 있으면 그 아이는 저렇게 웃는다. 나이 들면 어린애로 변한다고 그래서들 말하나 보다,

 

“좀 더 드릴까?” 그러다 내 눈을 다시 쳐다보며 곁의 봉지로 손을 들이민다. 그 봉지에도 같은 분량만큼의 쑥이 담겨져 있다.

 

“아뇨? 됐어요. 그것만 주세요.” 2천원이면 몽땅 사겠지만, 다 사질 않은 두 개의 사유가 내게는 있다. 하나는 실질적으로 내게 불향하게도 2천원의 여윳돈이 없었다. 또 다른 하나는. 길거리에서 장사를 즐기는 듯 하는 저 할머니의 행복한 하루를 더 보장해주고 싶은 바램에서 이었다.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폐지수집 고물상에 나는 잘 간다. 거기엔 저런 할머니들이 참 많다.

손수레를 끌힘이 없어서 낡은 유모차에 종이상자를 주워 나르는. 하루 고작 5청원 정도의 벌이밖엔 수입이 안 되지만 그 할머니들은 언제나 밝은 표정이고 늘 행복해 한다.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내 스스로 벌어 산다는 자긍심이 대단히 강한 우리네 어머님 들이다. 어쩌다 막걸리라도 한잔 나누면 모두가 자식자랑에 열변을 토할 만큼 대단한 자식들을 둔 할머니 들이다.

 

자식에게 내버림을 당한 할머니도 절대로 자기 자식 흉은 안 본다. 휘어진 허리를 유모차의 손잡이로 부축하며 따가운 볕에 온살들을 그대로 노출시키며 거리에서 폐지를 주워 생활해 나가시는 참으로 장한 우리네 어머님들이시다.

 

할머니께 나물 값을 지불하고 돌아서다 흘끔 어머님이 계시는 아파트 쪽을 바라보았다.

어머님 방의 창문이 열려 있고 내게 손을 흔드시는 어머님이 감으로 다가온다.

 

“그래, 잘했다, 너는 역시 내 자식이다.”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같다.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내 좁은 마음은 어머님을 향해서는 언제나 우쭐거려진다.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늘 가르침도 있어서이다.

 

“이게 뭐야?”

일 때문에 부산 어버이날 행사에 같이 갈수 없었던 아내는, 예정보다 늦게 올라온 나를 나무랄 눈치로 문을 따주다 손에 쥐고 있는 나물꾸러미로 눈길을 돌린다.

“응, 나물인데. 할머니가 길거리서 팔기에 샀어.”

빼앗듯이 낚아채어 아내는 비닐보따릴 끄르더니 경악할 듯 소리를 친다.

 

“아니, 이런 쓰레기를 뭣 하러 샀어? 쑥은 쎄서 먹도 못하겠구먼.”

불호령이 더 일기 전에 이실직고해야 한다. 나는 나물을 사게 된 동기를 요악하며 자세히 설명했다. 그제야 일그러진 아내의 얼굴이 펴지며 온기가 돌아온다.

“잘 했어. 그거, 마저 사주지 그랬어?”

 

초파일날이다. 나로 인하여 남이 행복하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세상에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 하셨다. 우리가 행하는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실질적으로 남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그처럼 행복한 삶이 어디에 있을까?

 

세상은 공평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는 적게 가질 수밖엔 없다고 또 나는 생각한다. 많다는 것. 그건 아주 불공평한 세상을 만드는 이유이다. 무엇이든, 그것이 설령 행복이라도 내가 많이 가지면 남은 틀림없이 적게 가질 수밖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승들은 자꾸 비워라, 비워라 하고 말씀을 하시는 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