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소리길에 내린 가을
소리길에 내린 가을.
10월7일 일요일.
합천군 가야면 가야시장을 지나 황산1구 축전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여기서 다리를 건너 황산마을 입구에서 소리길은 시작됩니다. 국립공원 입구까지 가을 추수를 눈앞에 둔 너른 황금빛 들판을 끼고 걷습니다. 물소리 새소리, 출렁이는 곡식들을 보면 마음도 따라 풍요로워 집니다.
마을에는 길 객들을 위한 온갖 먹거리를 파는 휴식처가 있습니다. 해장으로 간단히 목을 축이고, 해인사에 다다르면 파는 곳이 없지 싶어 비싼 줄 알면서도 한통에 4천 원 하는 막걸리를 몇 병 샀습니다.
여기서부터 국립공원의 시작입니다. 계곡을 따라 길은 이어졌고 요란한 물소리에 잡심은 파묻혀서 고단한 삶들은 잠시나마 잊혀집니다.
매표소까지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 이 코스는 과히 환상적입니다. 굴참나무 우거진 숲길 따라 모롱이만 돌아가면 선녀의 날개옷이 감추어져 있는 나무꾼의 집이 있을 것 같은, 설핏 든 단풍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며 꿈을 꾸며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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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이는 아무도 정문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길을 걷는데 돈을 받는다니 기분은 안 좋지만 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습니다. 1인당 3천원을 주고 통과하여 다시 소리 길로 접어듭니다.
구름다리를 건너자 길이 막혔습니다. 애석하게도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소리 길이 지난여름의 태풍에 휩쓸려 버렸답니다. 그래서 우회로를 이용하는데. 먼 산길을 따라 수고로운 발길을 힘들게 디뎌야 하는. 걷기가 아니라 여기는 진짜 등산코스입니다. 그러나 멀지는 않아서 30분 정도면 길상암에 당도합니다. 덕분에 억지춘향이 되어 산꼭대기에 자리한 암자를 구경합니다.
낙화담이라 하지만 부여의 낙화암을 연상시키는, 소리길 전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구비 구비 흐르는 물은 폭포를 동반하며 용소를 이루고, 열 길 낭떠러지 계곡을 건네 지른 구름다리위에는 경치를 관망할 수 있도록 너른 배려를 해놓아 한참을 쉬며 도인의 기품을 훔칩니다.
계곡으로 이어진 길이 끝나는 곳이 해인사 입구입니다. 길상암에서 여기까지는 40분이 걸립니다.
여기서부턴 절 내의 경지로서 엄숙을 요 하는데. 경내로 드는 통로엔 토속주와 묵사발을 파는 행상들이 즐비합니다. 짊어진 막걸리가 괜스러워 졌습니다. 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날꼬요? 탁배기 두어 잔에 원효대사를 닮아갑니다.
가을은, 가야산 해인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야시장 축전주차장에서 약 7킬로미터. 쉬며온 걸음도 2시간 반 밖엔 안 걸립니다.
걸은 만큼의 축복, 부처께서 내려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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