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격
아주대학 교수, 이국종이 쓴 골든러시를 읽었습니다.
병원 이야기는 재미가 별로겠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나의 기우였습니다.
그는,
자신이보고 겪은 병원 안과 밖의 세세한 일상을
생각의 양념과 버무리는 훌륭한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그 중. 호흡이 가빠오며 분노가 치밀어 책장을 넘기지 못한 대목이 있어 소개합니다.
건축공사장 8층에서 추락한 남자가 119에 실려 왔습니다.
이국종은 사력을 다해 덤볐지만 남자에게 다가선 죽음의 신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곧 떨어질 생명을 임시로 물려놓고
결과를 알리려(임종을 보게 하려고) 가족을 만나러 갔습니다.
가족은 북한 애들처럼 바싹 마른,
영양이 현저히 떨어진, 중2 여자애와 초등5학년 남자 애 뿐이었습니다.
“엄마는 어디 가셨니?”
“엄마, 없어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들은 무표정 그 자체였습니다.
이국종은 차마 아빠의 죽음을 알리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데
음료수병을 들고 어떤 여인이 다가왔습니다.
“이웃 아줌마입니다.”
일을 나가면 며칠씩 집을 비우는 남자가 딱해서
아이들끼리 밥해먹고 학교가고 그리해서. 가끔 도와주는 이웃 아줌마였습니다.
그날도 아빠가 사고를 당했는데도
누구 아이들 보살피며 갈 사람이 없어 따라왔다고.
아이의 엄마는 아이들 어렸을 때 집을 나갔는데 소식도 모른다고.
이국종은 안타까워 알고 지내던 정부부처의 무슨 위원에게 연락을 넣었습니다.
아이들 장래가 걱정되니 좀 보살펴주었으면 한다고.
그러고 몇 달이지나 어떤 세미나에서 그 위원을 만났습니다.
잊고 있었던 아이들 이야기가 거기서 나왔습니다.
위원은 이국종의 부탁을 받고 아이들이 보육원에 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 엄마라는 여자가 나타나 자기자식이라며
주민등본 등등. 무슨무슨 서류를 가득가지고 설치더니 아이들을 데려갔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제 엄마가 살고 있는.(다른 남자와)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끝일까? 아닙니다.
그 엄마라는 여자는, 죽은 남자의 보험과 보상금을 아이를 내세워 몽땅 찾아서는.
같이 사는 남자와 아이를 차에 태워 할머니(병으로 걷지도 못하는)에게
던지듯 내려놓고 사라졌답니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찾지 못하겠다고.
이국종은 골든아워에 사실만 나열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하지요.
나라도 뭐라 할 말을 못하겠는데 의술밖에 모르는 그가 무슨 말을 할까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엄마도 과연 신이 만들었을까? 분노가 치밀어서 책장을 덮었습니다.
-어른들은 처음엔 누구나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많지 않다.-
오늘 일요일. 서울엔 눈이 내린다는데 별 남쪽도 아니건만 진주는 비도 오지 않습니다.
올 겨울은 이렇게 눈 구경 한번 못하고 넘어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