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 많이 컸지?"
간밤에 비가 제법 내렸나 보다.
눈을 뜨니 마당에 빗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혹시나 해서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비가 얼마나 많이 왔다고 자정쯤 콩 볶듯 비가 퍼부어
시끄러워서 한숨도 잠을 못 잤는데.”
내가 워낙 고단하게 잤나 보다.
빗소리는커녕 천둥소리도 나는 듣지 못했으니.
비로 휴일이 되었지만 진주의 집에 나는 가지 못하였다.
비오면 또 해야 할 일이 현장에 남아 있어서이다.
모처럼 늦은 아침을 먹고
잠시 인터넷뉴스를 보고 있는데 주인 할머니가 나를 부른다.
“비가 와서 일하러 안 나갔네요. 내가 부탁이 있어 왔는디.”
올해 64세. 70이신 영감님과 단둘이만 사는 집에 나는 세 들어 사는데.
할머니라 부리기 뭐하여 동의를 얻어 형님 그리고 형수님이라고 나는 부른다.
“무슨 부탁인데요. 형수님.”
“내가 학교를 다니는데 학교에서 숙제를 주었당께요.
아자씨가 글을 잘 쓰신다 해서 이리 부탁을 하는 거라요.”
놀라운 사실이었다.
2년을 기거하면서도 몰랐던, 할머니는 시에서 운영하는
글 모르는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가져온 책을 보니 우리 때 초등 1학년 1학기 수준의 국어책과 흡사 닮았다.
아버지, 어머니. 꽃, 돌, 구름, 바위, 등.
걸음마 수준의 글을 할머니는 이제 막 배우고 있었다.
“배운 솜씨로 글을 하나씩 지어오라 했는데, 뭐, 글을 배우니 좋다란 뜻이 담긴.
옆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했으니 글하나만 아자씨가 지어주소.”
난감한 일이었다.
글을 알며, 편지나 동창회 소식지에 올릴 글 등이나 연설문 등,
때에 따라선 리포터 등도 대신 써 준적은 있으나
초등 일학년 수준의 글짓기를 해오란 숙제를 맡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세 들어 사는 죄로 안 해줄 수는 없는 일.
나는 두 개의 문장을 그 자리에서 만들어 주인 할머니에게 드렸다.
그러며 윗글은 스스로 혼자 지은 글이라 끝까지 우기고
아래의 글은 이웃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고 말하라 했다.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떤 글을 택할 것이냐고 나는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주인 할머니는 윗글인 자신이 썼다고 우길 글을 선택했다.
곁에선 할아버지는 아래의 글이 더 좋다며 아래 글을 택하라며 우격다짐을 놓았다.
글을 만들 때 나는 생각했다.
단어만 조금 아는 수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숙제는
온통 자식들의 손에서 이루어 질것이라고.
그래서 자식이 곁에 없는 내가 써주어도 하나도 맘에 걸리진 않는다고.
진짜 용감한 우리 주인집 할머니이시다.
그래선지 남들은 세비를 자꾸 올리는데 해마다 할머니는 내게 방값을 깎아 준다.
다른 곳에 가지 말고 돈 많이 벌 때까지 여기에 있으라며.
“할머니, 아니, 형수님 사랑해요.”
제목/ 글을 알며.
눈이 침침한건 마음에 의해서지
나이 듦이 아니었네.
글을 알며 마음이 맑아지니
환한 밝음에 싸인 세상이 다시보이네.
또 다른 글.
제목/편지
글을 배우며 나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 아들 잘 있지?”
그러면 아들은 답장을 해온다.
“그럼 엄마. 엄마도 잘 있지?”
편지는 30년 세월을 훌쩍 건너 뛰어
수줍음이 채 안 가신 새댁으로 나를 돌려 세워놓고
아들을 코 흘리게 개구쟁이로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아들 많이 컸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