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얼룩진 코로나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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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코로나마스크
“아니? 저건 새것인데. 어째 저기에 있을까?”
가느다란 바람이 부는 늦은 오후입니다. 폐지가 반쯤 담긴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던 할머니는 눈을 희번덕이며 손수레를 세웁니다. 길가에 새것이 분명한 하얀 마스크가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지? 누가 흘렸나?”
할머니는 둘레를 살펴봅니다. 학교 앞 육교 밑에 쪼그려 앉은 고양이만 보일 뿐, 휑한 거리엔 이따금 자동차만 지나갑니다. 마스크를 버린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할머니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자신의 마스크를 벗어 바라봅니다. 더러운 얼룩이 이리저리 묻힌 할머니의 마스크는 지저분하고 냄새조차 많이 납니다.
“어쨌든 오늘 횡재했네. 하늘이 도우시는 거야.”
할머니는 자신의 마스크를 길가 언저리로 휙, 던집니다. 새것인 마스크를 주워오다가 무언가 찜찜해서 자신이 버린 마스크를 찾아봅니다. 할머니의 얼룩진 마스크는 가로수 나무 밑에 떨어져 있습니다.
“전국이 코로나19로 생난리인데. 이러면 벌 받지.”
할머니는 버린 마스크를 주워서 자신의 손수레에 싣습니다. 새 마스크를 끼자 기분부터 달라집니다.
“새것이라 좋은데, 뭐야? 어린애 것인가 봐. 너무 작네. 그래도 어디야 이게, 훨씬 좋은걸?”
할머니는 작은 마스크의 고무줄을 늘이어 입에 걸고 손수레를 다시 끕니다. 엉성한 손수레의 부피지만 할머니에겐 힘에 부칩니다. 폐지를 받아주는 고물상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쩌나. 할머니, 폐지는 돈이 안 된다고 수차 말했잖아요. 빈 병이나 고철을 모아 오시라니깐.”
저울대에 올려 진 할머니의 폐지는 1kg도 안됩니다. 는적거리는 할머니를 보며 고물상 사장님은 안타까워합니다.
“폐지 값이 작년만 해도 괜찮았는데 코로나 오면서 지금은 1kg에 50원도 안 해요. 저는 할머니들 편리를 봐 드려서 사 주지만 다른 곳은 아예 안 받아요. 그래도 할머니 열심히 수거해 오셨는데 어쩐다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발끝만 바라보는 할머니를 고물상 사장님도 애처롭게 바라봅니다. 폐지 말고도 손수레에는 두 개의 빈 병이 실려 있습니다. 고물상 사장님은 2천 원의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줍니다.
“제가 그냥 드리는 건 아니고요. 빈병도 있으니 라면 값이라도 했으면 해서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할머니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인사를 하고 폐지를 내려놓습니다. 할머니는 나오다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돌아가 폐지더미 위에 있는 얼룩진 마스크를 가져다 손수레에 끼워 둡니다. 마스크가 귀한 세상에서 다시 써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봄이지만 바람은 쌀쌀하여 담벼락에서 자라는 목련나무가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길거리는 아직도 겨울입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유령의 도시처럼 삭막한 거리에 할머니의 손수레가 굴러갑니다. 고물상을 지나면 학교 담벼락이 이어져 있습니다. 평소엔 왁자한 학교가 조용합니다. 줄줄이 늘어선 문방구도 문을 닫아서 폐지 구경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주위를 흘깃거리는 할머니를 누군가가 부릅니다.
“할머니. 거기 좀 서 봐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학교 마당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혹시 나 말고 누군가가 더 있나? 흘끔거리던 할머니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 줄 알고 손수레를 세우며 뒤를 돌아봅니다. 얼굴을 커다란 마스크로 가린 아이 엄마가 할머니에게 손가락질해대며 다가옵니다. 아이는 두 돌을 갓 지났지 싶은, 엄마에게 손을 잡히어 끌려오는 모양이 엉성합니다. 연신 저, 저, 소리를 내 지릅니다.
“할머니. 그거요. 이리 줘요. 우리 아이 마스크를 왜 할머니가 쓰고 계세요?”
아이 엄마는 할머니의 마스크를 가리키며 어서 내놓으라며 화를 냅니다.
“우리 아이가, 글쎄, 금방 새것을 씌워주었는데 할머니가 빼앗은 거예요.”
할머니가 마스크를 벗자 아이 엄마가 획, 하고 낚아챕니다.
“아주 나쁜 할머니네. 저런 할머니는 벌을 받아야 해요. 요즘 마스크가 얼마나 귀한 보물단지 취급을 받는데.”
아이 엄마를 따라 나온 다른 엄마가 거들자 할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게, 그게 아니고. 그게. 글쎄.”
할머니는 그게 만 연발하며 다음 말을 잊지 못합니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입니다.
“마스크를 빼앗은 범인이 이 할머니입니까?”
난데없이 나타난 경찰 아저씨로 인하여 학교 앞은 더욱 소란해집니다.
“제가 신고했어요. 요즘 마스크 훔치는 죄가 얼마나 큰데요.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하잖아요.”
다른 엄마가 당당하다는 듯 앞으로 나섭니다. 아이 엄마는 오히려 당혹스러워합니다. 다른 엄마와 경찰 아저씨를 번갈아 바라봅니다.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까지 해요?”
“일단 신고가 들어왔으니 할머니는 파출소에 좀 가셔서 조사를 받아야겠습니다. 마스크 도둑은 엄히 다스리라는 상부의 지시도 있고 해서요.”
경찰 아저씨는 손수레를 끌어다 학교 담벼락에 세웁니다. 따라온 할머니가 손잡이에 걸어 둔 얼룩진 마스크를 자신의 얼굴에 쓰고 경찰 아저씨의 뒤를 따라갑니다. 다행히도 파출소는 바로 곁이어서 할머니의 수고는 길지 않습니다. 경찰 아저씨가 빨리 나타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할머니. 바른대로 말씀하세요. 아이 마스크는 왜 훔쳤어요?”
눈물만 흘리던 할머니는 고개를 들며 더듬거리며 말을 합니다.
“제가요. 80년을 살았지만 남의 것은 훔쳐본 적이 없어요. 폐지 한 장이라도 버려진 것만 가져왔거든요.”
“할머니. 증거가 있잖아요. 이 마스크는 아동용인데 아니라고 하실 겁니까?”
경찰 아저씨의 말투는 부드럽지만, 할머니에게 마스크를 보이며 야무지게 채근합니다.
“그거요. 마스크. 저기 육교 밑에 버려져 있었어요.”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더니 어디선가 커다란 종이가 파출소 마당으로 날아듭니다.
“아. 저것 주워야 해요.”
할머니는 날아가려고 바동거리는 종이를 주워 파출소 앞에 놓아두고 다시 들어옵니다.
“할머니. 커피입니다. 드세요.”
경찰 아저씨는 그새 열이 오른 전기 주전자에서 물을 내리며 커피를 타서 할머니에게 내밉니다.
“고맙습니다.”
할머니는 공손히 커피잔을 받지만, 손은 덜덜 떨리고 있습니다.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마음이 자꾸만 무거워 옵니다.
“할머니. 아직 계셨네요.”
아이 엄마와 또 다른. 할머니를 신고한 다른 엄마가 파출소에 들어옵니다. 따스함이 조금 섞인 봄바람이 엄마들 뒤를 따라 같이 들어옵니다.
“후,”
급히 왔는지 아이 엄마는 숨부터 돌립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참 나빴어요. 먼저 사과부터 드립니다.”
아이 엄마와 다른 엄마가 할머니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해서요. 얼른 학교 경비실에 가서 감시카메라를 돌려보았어요. 우리 아이가 저 마스크를 벗어서 버렸더라고요. 할머니는 길가에 나뒹구는 마스크를 주워 쓴 것이지요. 그냥 두었으면 차에 밟히어 못쓰게 되었을 거예요.”
다른 엄마도 말을 거듭니다.
“요사이 마스크 도둑이 많아서요. 잠시 착각했어요. 할머니. 용서해주세요.”
두 엄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경찰 아저씨가 나섭니다.
“세상이 아무리 흉흉해도 마스크 한 장 가지고 이런 고발이 생기면 되겠습니까? 할머니 잘못이 아님이 밝혀졌으니 다행입니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고맙습니다.”
무엇이 고마운지. 할머니는 엄마들과 결찰 아저씨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서야 파출소 문을 나섭니다.
“아니? 누가 내 손수레에?”
할머니는 담벼락에 세워둔 손수레를 보며 깜짝 놀라 소리칩니다. 비어 있어야 할 손수레에 무엇인가 담겨있어서입니다.
“할머니. 잘 아시겠지만, 손수레에 폐지 가득 모아도 돈 천원도 안 돼요. 저희도 비슷한 일을 해서 잘 아는데요. 우선 그것 벗고 이걸 쓰세요. 조금 전에 약국에서 샀어요.”
할머니를 뒤 따라온 아이엄마가 할머니에게 새 마스크를 내밀며 말을 이어갑니다.
“저희가 학교 강당 내부를 지금 수리하고 있어요. 저 고철은 작업하며 나온 건데요. 고철 값이나 폐지 값이나 같지만, 구리는 아니잖아요. 저 정도면 10kg이 더 나갈 거예요. 할머니께 그냥 드립니다.”
고철도 값이 내려서 1kg에 80원 받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할머니입니다. 구리는 매우 비싸서 1kg이면 6,000.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10kg이면 돈이 얼마지?’ 속으로 셈을 하는 할머니의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갑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할머니는 연신 머리를 숙이며 손수레를 잡습니다.
“할머니. 이리 주세요. 오늘은 제가 더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이웃 덕에 코로나는 금방 물러갈 겁니다. 고물상은 멀지 않으니 제가 끌어다 드릴게요.”
언제 왔는지 경찰 아저씨가 할머니의 손수레를 잡아끕니다. 노랗게 막 피기 시작한 아기 개나리가 배시시 웃음을 띠는, 바람도 수그러든 3월의 볕이 따사로운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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