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가 바뀌고도 앞차가 가지 않으면 우리는 빵. 하고 경적을 울린다.
어쩌다 늦은 출발을 하게 된 당사자가 나라면?
당연히 기분 나쁘지.
“2초의 여유도 없는, 진짜 한심한 사람이군.”
이렇게 흉을 볼 것이다.
2초.
그렇지.
2초를 기다려주지 못하는 우리는,
여유를 모르고 너무 바쁘게만 살아왔다.
하지만.
그 2초에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
극과 극이지?
2년 전의 전쟁영화 고지전이 요즘 영화채널에 심심찮게 나온다.
내일이 동란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여서겠지만.
개봉극장에서 고지전 영화를 보았다.
거기 2초란 별명을 가진 북한군 저격수가 나온다.
2초의 무자비한 살상에 치를 떨던, 티브이로 다시 보며 기억을 떠올렸다.
사격을 하고
다음 표적지로 총구를 돌리며 방아쇠를 당기는데 걸리는 시간이 2초다.
그 2초안에 몸을 숨기지 못하는 국군은 북한군 저격수에게 목숨을 잃는다.
소련제 모신나강 소총을 들고 수많은 국군의 생명을 빼앗은,
놀랍게도? 2초는 여자였다. 연약하기 이를 때 없는 앳된 얼굴의 여인.
우리가 여유를 갖자며 쉽게 말하는 2초는,
전쟁에선 생목숨이 날아가는 순간이다.
요즘은 2초가 아닌
25초의 여유에도 차를 출발시키지 않는 운전사가 허다하다.
25초란 수식어는 보행신호등에 표시되는 숫자를 말하는데.
보통의 보행등은 25초에서부터 내려온다.
우리 집에서 직선거리로 500미터만 나가면 남강이 있다.
거기 강변로 3거리 부근에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 담장과 강둑의 가로수에는 다음과 같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아이가 자고 있어요. 경적, 울리지 마세요.”
거리에 침을 뱉지 맙시다.
이런 현수막이 붙은 마을에 가면 틀림없이 침 뱉는 사람이 많다.
마찬가지,
삼거리에서 얼마나 경적이 울리기에 저런 현수막을 내 걸까?
앞에서처럼
이곳을 지나는 운전사들이 모두 2초의 여유를 알아주지 않아서 일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유심히 지켜보면 진행 신호등이 왔는데도 가지 않는 차가 참 많다.
여유를 지키느라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2초가 아니라 25초가 지나도 때때론 가지 않는다.
바쁜 운전자는 부아가 치솟는다.
신호주기가 짧은 곳이라면, 어정거리는 차 때문에 판판이 신호를 놓친다.
그러기에 아이가 자고 있음을 알면서도 경적을 울린다.
화물자동차 경적. 대단하지?
기차화통 대여섯 개는 삶아먹었을 것이다.
빵빵 거리면 아이 아니라 어른이라도 펄쩍뛰며 놀란다.
무엇 때문에
2초 아니라 25초가 지나도록 출발하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스마트폰이 원인이지 싶다.
차량 운전자들 거의가 신호등에 걸리면 스마트폰을 치켜든다.
문자 보내고 확인하고.
뒤차의 경적이 울려서야 신호등이 바뀐 걸 간과하니.
이걸 어쩌랴?
운전을 직업으로 삼는, 택시나 버스 또 화물차등,
신호등 바뀌는 시간을 재며 출발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들에겐 1분 1초가 안타깝도록 아까운 시간이다.
2초의 여유도 지켜주지 못하는 운전자나
25초가 다 가도록 차를 출발시키지 않는 운전자나
대단한 각성을 하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