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를 처음 만나던 그때의 내 나이가 열 살이었다.
열두 살이나 더 많은 큰누님이 시집을 가고 바닷가 마을로 이사하던 그해 유월,
모래언덕에서 붉게 핀 해당화 꽃을 나는 처음으로 보았다.
오색 금줄이 둘려진 택시를 타고,
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큰누님의 한복 치마저고리 색깔이 해당화 붉은 꽃잎과 닮아있었다.
꽃잎에 얼굴을 드밀자 고운 단장을 한 큰누님의 분내가 솔솔 풍겨 나왔다.
민들레 질경이. 쇠비름 바랭이.
모두가 질겁하고 달아난 모래더미에 해당화는 어디건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떠나오며,
생각하기 싫은 거기서의 추억과 함께 해당화의 기억도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오랜 세월이 흘러
금강산 관광이 단절되던 그해 유월에 나는 해당화를 다시 만났다.
내금강 가는 길목에 자리한 표훈사 앞마당에 핀 모란꽃밭 한 가운데에
해당화 한 그루가 있었다.
놀라운 것은
누구도 거기 해당화가 있는 줄( 절의 스님도)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일깨워 주어도 변이 종 모란으로 모두들 치부하였다.
꽃잎 속에 얼굴을 묻자 그 전해에 별이 되신 큰누님이 떠올려졌다.
연붉은 꽃, 송이 송이엔 오래전 모래밭에 묻어두었던 큰누님의 향기가 되살아 피어올라왔다.
금강산관광이 문을 닫으며
내 큰누님의 꽃 해당화는 또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유월이 몇 번인가 가고 또 오고.
다시 찾아온 올 유월에 나는 해당화를 또 만났다.
이웃들과 부산의 오륙도 관광을 나선 길에서였다.
오륙도를 등에 돌리고
이기대쪽의 산길을 더듬다가 길옆의 꽃밭에서 해당화무리를 만났다.
거친 바닷바람 속에서 훈훈한 인정으로 꽃을 피워낸,
내 큰누님을 닮은 해당화 꽃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먼,
이야기 속에나 있음직한 큰누님의 흔적은 이미 해당화를 떠나있었다.
나이 먹음은 추억도 멀리로 쫓아버리나 보다고 어쩔 수없는 탄식만 하였다.
지난 주말에.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이란 타이틀로 전시회가 열리는 덕수궁을 나는 찾았다.
그림의 그자도 가당찮도록 미술에 대하여는 무지하지만,
생애에 이중섭과 박수근과 김환기등을 언제 또 만날까?
뒷날 있을 문우의 출판기념회를 빗대어 현대미술관으로 갔다.
이중섭과 박수근의 전시작품 앞에는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45억짜리 빨래터를 보려던 마음을 고쳐 잡고 방향을 돌리다가
이인성의 작품 앞에서 내 발은 얼어붙었다.
해당화였다.
붉은 해당화 꽃 옆에 선 소녀풍의 여인에게서
멀리 가버린 줄 알았던 큰누님의 흔적이 나를 불러 세웠다.
금방이라도 먹구름이 비와 바람을 불러들일 듯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 없어 기도를 드리고 손가락을 빠는 작은 소녀와는 달리
어느 한곳을 응시하는 성숙한 여인의 눈동자 속에 깃든 담담함.
어린 내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던,
또 다른 어머니인 내 큰누님의 그때 모습이었다.
연붉은 꽃잎 속 도드라진 꽃술들에서
큰누님의 향취가 불쑥 솟아오를 것 같아
한참이나 나는 자리를 못 뜨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돌아와 기억을 더듬으니 이인성은 내 머리 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
오래전에 읽은 최인호의 소설에서
혼란기 치안대의 총격에 의해 39세로 숨진 천재미술작가가 바로 이인성이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의 이미자 노래도
이인성의 해당화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나 혼자 생각해보며.
해당화의 꽃말 온화처럼 조용하고 부드러운,
내 큰누님을 그리고 또 그리다가,
왈칵.
목울대를 치미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큰누님 생각에 기어이 나는 …….
(이인성. 해당화.1944년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