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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과 동백과 그리고 나

기찻길옆 2014. 2. 4. 20:25

바깥일을 주로 하는 우리네 노가다 틀에겐 명절전후에 여러 번의 회식이 오고간다. 주고받는 삯이 이때에 몰리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벌리는 판이 작아졌을 뿐 이번 설도 예외는 아니다.

고기 집에서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2차는 변함없이 노래방을 찾는다. 무슨 노래를 부를까? 이때부터 내 고민은 깊어진다. 술기운을 빌리면 무슨 노래이던 성질대로 소화시키는데 몸 생각한다며 적게 마신 술이 이럴 때엔 화근으로 작용한다. 이런 자리엔 맞지 않는 음울한 노래를 즐겨 부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래란 부르는 노래와 듣는 노래로 우리는 구별한다. 소프라노 조수미의 노래를 듣기 좋아한다고 즐겨 부를 수는 없다. 자신의 음색에 맞추다보면 부르는 노래는 딴판인 뽕짝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노래방에 가면 평소엔 남의 노래를 들어주는 쪽으로 나는 정리한다. 하지만 나도 좋아하고 또 남도 좋아하는 즐겨 부르는 노래는 있다.

언제이던가?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지금처럼 비가오던 어느 토요일. 민속주점에서 기다리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택시 안에서였다.

라디오에서 디제이로 임백천이 나왔는데. 조영남과 같이 최근에 취입한 신곡이라며 비는 내리고를 들려주었다.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시내를 달려가는 택시 안의 라디오에서도 비가 내렸다. 콩 볶듯 빗소리가 한참을 울리고 난 뒤에 나오는 노래. 비는 내리고.

지난밤 밤기차로 너를 멀리 보내고 불 밝은 거리를 서성거린다.

오가는 사람들에 밀리고 또 밀리며 비좁은 골목길 마냥 헤맨다.

비는 내리고 비는 내리고, 지나온 발자국마다 빗물이 고이고

비는 내리고 비는 내리고, 지나온 추억마다 눈물이 고이고,

노랫말도 그렇고 얼마나 내 안을 뒤흔들던지 주점에 도착하자 나는 레코드점에 전화를 넣었다. 애석하게도 그 노래가 담긴 판은 시중에 배포되지 않았다는 답만 들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난, 하필이면 그날도 비는 내렸다. 한번 맘에 들면 엔간해선 주점을 바꾸지 않는 내 성격 탓에 대낮임에도 불콰하게 앞의 그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날, 비는 내리고가 방금 도착했다고 레코드점 주인이 전화를 해왔다.

무식하게도 나는 택시 왕복차비와 판값을 들여서 당장 샀고 주점에서 처음으로 판을 틀었다. 은퇴의 노래를 타이틀로 비는 내리고는 8번째에 있었다.

모란동백이 거기 3번째로 실려 있었다. 이 노래는 첫음절부터 애잔하게 내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한계령 골짝 길로 대변되는 어린 시절의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찾아주고, 비속에 묻혀오는 그리움의 대상들을 감은 눈 안으로 떠오르게 하는 신비한 마력까지 뿜어 나왔다.

자연히 나는 모란동백에 파고들었고. 얼마 안 되어 2절까지 가요 책을 안 보고도 완벽히 부르는 나의 애창곡으로 변모하였다.

그때가 2001년쯤인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노래를 한참이나 나는 노래방에서 부르지 못했다. 뭇 사람들이 찾지 않아선지 신곡 표를 늘 뒤졌지만 주인도 그 누구도 모란동백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고 10년이 지난 20124월에 모란동백을 타이틀로 조영남은 새 앨범을 발표하였다. 전국의 노래방에 벽보형식으로 모란동백의 찾는 번호 64146이 큰 글체로 걸리며 둘다섯의 밤배를 제치고 내가 노래방 가면 가장 잘 부르는 대표곡으로 등극을 했다. 그러나 음률이 좀 서글퍼서 기운을 돋우는 노래로선 적합하지 않아 난장꾼들의 모임에선 부르지 않았다.

이번 그믐밤의 모임에선 모란동백을 나는 불렀다. 내가 무엇을 부를까 주춤거리는 사이 동료가 잽싸게 모란동백을 찾아서 내게 디밀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떠밀려서 불렀는데 흥이 살아나기 전이라 노래가 분위기를 깰 정도까진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영남이 새 노래도 없으면서 모란동백을 타이틀로 앨범을 낸 이유는 분명 있었다.

문화방송의 놀러와 란 프로에 조영남이 나왔다. 거기서 조영남은 백남봉의 장례식 때에 남보원이 부른 한오백년을 들먹였다. 남성4중창단 블루벨스의 한 단원이었던 누군가와 나눈 남보원의 농지거리를 소개하였다.

네 장례식 때엔 큰일이네. 잔치잔치 벌렸네 이 노래를 불러야 하니 말이야.”

영남이 형이 더 큰 일인걸? 구경 한번 와보세요. 하고 화개장터를 불러야 하니.”

엄숙한 장례식장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한다.

조영남은 놀러와 프로에서 자신이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화개장터를 부르지 말고 모란동백을 불러 달라고, 그래서 특별한? 주문을 하여 이 노래를 히트시켰다.

이름 있는 가수의 장례식에선 으레 그 가수의 노래를 불러준다. 황금심은 알뜰한 당신, 고운봉은 울려고 내가 왔던 가로 시작되는 선창이 불렸다.

장례식장에서의 노래는 가수에게만 극한 되진 않았다.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은 김수희의 애모를 무척이나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당연히 그의 추모식에서는 이 애모 노래가 불려졌다.

그렇다면 나의 장례식장에선 무슨 노래가 불리길 나는 원하고 있을까? , 우리처럼 이름 없는 사람에겐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헛소리이다. 비슷한 직종에서 일하는 인연들의 장례식장에서 아직 노랫소리를 들어본 기억도 없다. 만약 내가 노래를 부르라고 유언을 하더라도 내 아이들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꼭 한곡 정해보라 한다면? 조금은 고상한 척. 바이올린의 정경화 부모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던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쯤 이라면? 하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영남의 모란동백이 내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떠돌다 어느 나무그늘에 잠든다 해도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모란과 동백과, 그리고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 그 사람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삶을 모나지 않게 살려고 노력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