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정이식
배가 고팠다.
술 한 잔 얻어 걸치러 따라간 대폿집에서
안주로 나온 삼겹살에 정신이 돌아갔다.
허겁지겁 구워먹다 불판에 팔이 데었다
뜨끔했지만,
얻어먹는 주제라 아무 소리 못 했다.
하지만,
덴 자국이 너무 아려서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나
화장실 형광등 붉은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이런?
팔뚝에 커다란 지렁이 한 마리가 흉측스럽게 붙어 있다.
잠자리 들어서도 지렁이 이놈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후끈거리고 따끔거리고 밤이 깊어지며 더 도져서
잠은커녕 몸 뒤척이기가 바빴다 .
뭐해요? 잠 안자고.
피곤함에 지친 아내가 쓴 푸념을 늘어놓았다.
응,
지렁이 한 마리가 붙었나 봐.
지나는 말처럼 중얼거리며 나는 돌아누웠다.
눈을 감아도 또 떠도
꼬물거리는 지렁이는 내 안에서 떠나질 않았다.
쑤시고 아린 짓을 퍼 대는
지렁이 한 마리 때문에 어둠의 귀신에게 쫓겨 다니다가
문득,
지렁이 한 마리가 붙었나 봐.
이 말은 아내가 먼저 한 말이란 생각이 들어 몸을 일으켰다 .
언제이던가?
지금처럼 실직하고 집안에서만 웅크리고 지내던 때,
아내는 내 몫까지 번다며 편한 일 그만두고 돈 더 주는 새 직장으로 몸을 옮겼었다.
그 며칠 후,
자정 다되어 퇴근한 아내의 몸에서는 역겨운 기름 냄새가 진동하였다.
놀고먹는 것만도 미안하여 잔소리 한번 못하고 억지로 돌아누운 그날
아내는 자꾸만 몸을 뒤척였다.
뭐해? 잠 안 자고.
지금의 아내처럼 그때에는 내가 그렇게 말을 하였다.
응?
지렁이 한 마리가 팔뚝에 붙었나 봐. 헤헤.
그날을 돌이켜 손을 꼽아보니 햇수로 10년.
잠든 아내의 긴 옷소매를 가만히 걷어 올렸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아내는 긴소매 웃옷만 고집하였다.
긴소매 웃옷이 시중에 유행하는 패션이라며 나는 또 예사로 생각했었다.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고단함에 빠진 아내의 팔을 들고
창밖 경비 등불 희미함 아래 비추어 보았다.
아!
거기엔 내 팔뚝에 붙어 있는 지렁이보다
더 크고 흉측한 지렁이들이 꼬물꼬물 열을 지어 붙어 있었다 .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하고자 해도 할 일이 없어서
애꿎은 세상 탓하며 그래도 하늘 부끄러운 건 알아 방구석에만 숨어 지내던,
그때에 아내는 나도 모르게 팔뚝에 커다란 지렁이 여러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200 도를 오르내리는 기름을 끓여대어, 생선이야 채소야 그 속에 튀겨대는
열악한 작업장의 튀김기름이 튀어 온 살갗 짓무르다 못해 터지기까지 하여,
흉물스레 생긴 지렁이를 안 보이려 잠자리에서도 입은 아내의 긴소매였다.
바보같이 나는 고작 지렁이 한 마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데
수십 마리 지렁이를 십여 년간 키워온 아내는 그 많은 밤을 어찌 다 보냈을까?
울컥,
내지른 눈물 한 방울.
꼬물꼬물 기어드는 아내의 지렁이 위에 뚝, 하고 떨어진다.
그러며 나는 노란 달빛을 불러들여
아내의 팔뚝을 휘감고 있는 지렁이의 숫자를 다시금 세어본다.
열한 마리 열두 마리 열세 마리 열네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