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친척 결혼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버스는 두류공원으로 갔습니다.
두류공원은 치맥파티가 한창이라며 혼주가 한바탕 쏜다면서요.
두류공원.
퍼뜩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39세에 요절한 한국의 고갱이라 불리는 이인성입니다.
마침 주차장 가까운 곳에 인물 동산이 있어서 치맥파티를 뒤로하고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대구 두류공원. 인물 동산의 이인성 동상.)
작은 체구에 붓을 들고 멀리를 응시하는,
이인성은 전성기 때의 젊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인물 동산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내가 이인성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대표작 해당화 때문이지요.
한 5년 되었나요?
이중섭, 박수근의 그림을 보려고 덕수궁 미술관에 갔을 때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그날따라 학생 관람객이 많아서 이중섭의 그림 앞에 장사진이 쳐졌고.
그 들이 가기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마주친 이인성의 해당화.
그 앞에서 내 혼은 모두 빨렸습니다.
(이인성/ 해당화)
그때부터 흠모의 대상이던 이인성을 만나려고 인터넷과 책방을 뒤졌습니다.
이인성은 대구가 낳은 천재 화가입니다.
대구는 이인성 미술상을 제정하였고 올해까지 20회째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거기 이인성의 동상 옆자리에 해당화 한그루만 심어놓았으면.
나의 작은 바램입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서 해당화가 떠나지 않았는데요,
내 어린 시절 터전이었던 강원도 여운포리 바닷가에는 삽짝만 나서도 해당화가 천지였습니다.
이맘때 여름이면 발가숭이로 바닷물에서 수영하다가
속이 허전하면 우리는 모래벌판으로 나와 해당화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빨갛게 익은 것은 씨앗 고르기가 번거로워 덜 익은 열매를 땄습니다.
반을 쪼개고 속을 발라내어 씹으면 풋풋함이 빈속을 환하게 밝혀주는.
한주먹 먹노라면 절로 사라지는 배고픔. 그 마을에서는 해당화 열매를 율구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여운포리 바닷가에 해당화가 지천인지 떠나온 지 오래되어 기억도 가물거리는,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리운 여운포리바닷가.
해수욕장이 있는 동호리서부터 현북면 광정리의 하조대까지 이어진 눈부시도록 하얀 모래밭.
그 모래펄에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어도 저 홀로 피고 지는 아름다운 꽃 해당화.
메마른 모래밭에 험한 갯바람을 맞으면서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화사한 꽃을 피우는 해당화 꽃은 우리 어머님들의 숨결이기도 합니다.
꽃말이 가리키는 이끄는 대로처럼 고난과 아픔을 이겨내어 성숙을 담은 어머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해당화의 아름다움은 거저 얻어지지 않습니다.
모래땅에 뿌리를 내리고 모진 해풍을 이겨내면서
순수와 그리움을 엮어내며 꽃으로 피기까진 많은 역경을 거쳐야 합니다.
대구서 진주까지 시간 반을 버스에 몸담고 오면서 머릿속은 온통 해당화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버스는 진주에 도착했고.
그때서야 진주에서도 해당화 꽃을 보았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6월30일 사진)
나는 다시 내 차를 끌고 언젠가 보았던 이웃마을의 화단으로 달려갔습니다.
새로 지은 아파트마을인데 특이하게도 인도 옆 빈자리에 해당화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그때는 꽃도 피지 않았는데, 아니 한 두송이 피었는데.
지금보니 꽃은커녕, 열매마저 빨갛게 모두 익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나는 행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마 그 열매가 해당화의 율구란 사실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 휴일에는 팻말에 해당화를 써서 그곳에 꽂아 놓을까 생각하며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해당화 피고 지는. 국민애창곡의 첫머리에 해당화가 나와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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